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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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처음 그의 소설을 접한 것은 아마도 한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을 통해서였을 텐데, 좀 특이한 러브스토리라는 것 외에 남아 있는 기억은 없다. 그 이후로도 그의 소설을 몇권 더 읽기는 했지만 (베스트 셀러라니까 나도 한번 읽어본다는 생각으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그의 책이 나오자마자 사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의 열성팬들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하지만 정작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나아가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소설때문이 아닌 그가 소설을 쓰는 방식,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해 알게 되고 부터이다.

하루키가 소설을 쓰는 방식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소설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소설을 쓰는 장인이다. 매일 매일 거르지 않고 일찍 일어나 오전 몇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영감이 있을 때만 폭풍처럼 쉼없이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영감이 떠오르건 아니건, 매일 5시에 일어나고 오전의 몇시간 동안은 홀로 책상에 앉아서 집중해서 글을 쓴다. 그렇게 오롯이 집중해서 글을 쓰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충전의 시간이다. 그는 운동을 하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충전을 한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기 전에 잠에 든다. 이와 같은 규칙적인 생활을 20년 이상 지속해 왔다고 한다.

그런 하루키가 운동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선택한 것은 자연스럽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장거리 달리기는 혼자서 하는 행위이다. 운동화만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만의 페이스로, 자신의 심장이, 다리가, 몸이 견딜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운동이기에 하루키는 큰 고민 없이 달리기를 자신의 운동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달리기를 함으로서 담배를 끊었고 (하루에 60개피를 피우는 지독한 골초였었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매일 매일 꾸준히 달리는 것은 물론 매년 한번씩 마라톤에 참가하는 원칙을 20년 넘게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달리기라는 행위가 하루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가 어떤 생각으로 매일매일 달리기를 하는지에 대한 글이다. 다분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데, 사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그는 이 책의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달리기에 대해 솔직하게 쓰는 것과, 나에 대해 솔직하게 쓰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일종의 자서전으로 보아 주길 바란다고 했다. 내 생각에 이 책은 일종의 자기 개발서 (self-help) 로서도 손색이 없다. 남한테 충고하기보다 그저 자기가 생각하고 실천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기에, 시중의 수없이 많은 (쓸모없는) 자기 개발서보다 훨씬 가슴에 와 닿는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문구는 하루키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드러내는 동시에 교훈적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설정한 목표를 스스로의 힘으로 달성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감내해야 할 고통은 감내하면서 말이지요. 그러고 나면 나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이게 이사람의 진심일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보여지는 것을 의식해서 쓴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작가로서의 하루키가 아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하루키에 대해 알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 싶다.

그의 달리기는 그의 인생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닮고 싶은 무척 멋있는 인생이다.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게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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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The Mistrust of Science

(원문동영상)

만약에 칼텍이 제 역할을 했다면—저는 그랬을 거라고믿습니다—여러분은 이제 모두 과학자입니다. 영문학, 역사학 전공자 여러분한테는 좀 실례되는 말일 수 도 있겠습니다만, 여러분들도 과학자입니다. 과학은 특정한 전공분야나 직업이 아닙니다. 과학은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헌신, 즉 실험과 사실에 기반한 관찰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고 지식을 쌓는 방법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닙니다. 자연스럽지 않고 직관적이지 못한 방식입니다. 때문에 이것은 배워야만 가능한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과학적인 설명은 신의 가르침, 경험, 상식과 상반됩니다. 언젠가 상식은 우리에게 태양이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고, 추운 곳에 노출되면 감기에 걸리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주: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호흡기 질환임.) 하지만 과학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직감들이 가설이라고 부르는 것들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 가설들은 검증이 되어야만 합니다.

제가 오하이오의 고향 마을에서 대학에 왔을 때, 가장 지적으로 놀라운 경험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던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교수님들과 동료 학우들을 통해 잘못된 지식들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부모님께 그분들이 알고 있던 지식들을 왜 잘못 된 것인지 이야기 해 드리곤 했습니다. (부모님은 그걸 좋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저는 단순히 하나의 믿음을 다른 믿음으로 교체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과학자들의 사고 체계를 깨닫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위대한 물리학자였던 에드윈 허블은 1938년 칼텍 졸업 연설에서 과학자들은 남의 생각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해 “건전한 비판의식, 판단의 유보, 체계적인 상상력” 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과학자는 논쟁적인 마인드 셋이 아니라 실험적인 마인드 셋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으로서 이것은 제게 그저 하나의 생각하는 방법에 그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은 존재의 방식이었습니다. 굉장히 이상한 형태의 존재방식 이지요. 여러분은 비판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안됩니다. 또 여러분은 판단을 유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만, 한편으로 또 판단을 내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여러분은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희망합니다. 사실(팩트)을 관찰하고 여러분이 예측하거나 기대하는 결과를 관찰된 사실에 비추어 검증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던 가설이 확인하거나 거절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여러분은 그 어떤 것도 완전히 결론내려지는 것이 아님을, 모든 지식은 그럴 가능성이 높은 추정일 뿐이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기존의 지식과 모순되는 증거들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허블은 이것을 “과학자는 세상을 연속적인 추정으로 설명한다.” 고 잘 말했습니다.

과학적인 접근법은 굉장히 강력합니다. 과학은 지난세기 우리의 평균 수명을 두배 가까이 늘렸고, 세상을 풍족하게 만들었으며, 자연과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깊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적 지식은 항상 신뢰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분적인 이유는, 과학적 지식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학에 의해 제공되는 지식이 매우 확실할 때에도 사람들은 종종 그것에 저항하거나, 때로는 아예 부정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무수한 반대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백신이 아이들에게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총을 소유하는 것이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그렇지 않습니다), 유전자 변형 작물이 해롭다고 믿으며 (득실을 따지면 득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기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기후 변화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백신에 대한 공포는 그것이 근거 없음을 보인 수십년에 걸친 연구 결과들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 왔습니다. 약 25년 전에 한 통계적 분석 결과가 thimerosal 이라는, 박테리아 감염을 막기 위해 백신에 사용되는 보존제가 자폐증과 상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는데, 이 분석은 오류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과학자들은 그 이후로 수백건의 연구를 수행했지만 자폐증과 백신의 연관성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백신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몇몇 국가에서 해당 보존제를 백신에서 제거했지만, 자폐증은 줄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공포는 더욱 커졌습니다. 영국의 한 연구는 8명의 아이에서 자폐증의 발병과 홍역, 유행성 이하선염 및 풍진 백신 접종시기 사이의 연관성을 주장했습니다. 그 논문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져 철회 되었습니다. 저자가 아이들에 대한 데이터를 조작하고 엉터리로 해석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 논문의 결과를 재현하고자 한 연구들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률은 현저하게 떨어졌고, 이는 홍혁과 유행성 이하선염의 창궐로 이어져 작년에 미국, 캐나다, 유럽에서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감염되고 심지어 일부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사람들은 과학적 주장들이 자신들의 주관적인 믿음과 충돌할 때 이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홍역이나 유행성 이하선염을 주변에서 더이상 관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폐증에 걸린 아이들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 “내 아이는 백신을 접종 받기 전까지만 해도 완벽히 정상이었는데 백신 접종 후에 자폐증에 걸렸어요.” 라고 말하는 한 엄마를 봅니다.

자 여러분은 그들에게 그것은 상관 관계일 뿐 인과 관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생후 몇년 동안은 두세달에 한번은 백신을 맞아야 아이들이 병에 걸릴 확률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학이 백신과 자폐증에 아무 관련이 없음을 보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아이디어가 사람의 머리 속에 자리잡으면 이것을 끄집어 내기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과학적 권위를 믿지 않는 경우에는 말이지요.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과학의 권위에 대한 믿음의 현저한 감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고든 고챗 (Gordon Gauchat)은 1974년과 2000년 사이의 미국 서베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 매우 걱정스러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에 대한 대중의 믿음은 감소해 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특히 심한데, 교육 수준이 높은 보수주의자들 조차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74년에, 대학 교육을 받은 보수주의자들은 과학에 대해 가장 높은 정도의 신뢰를 보인 반면, 오늘 날 이들은 가장 낮은 수준의 신뢰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고챗이 그들 자신만의 문화집단 이라고 묘사한, “과학계의 지배적인 논리에 종종 반하는 자신들만의 지식 기반을 생성하는” 여러 진영들이 있습니다. 일부는 종교 단체들이고 (예를 들면 진화론에 도전한다거나), 일부는 산업 단체들입니다  (기후 변화 회의론). 또 다른 일부는 왼쪽으로 더 치우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 의학을 거부하는 사람들). 이들 그룹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한가지 면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그들 모두는 의심을 허용치 않는 확고한 믿음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절대적인 믿음을 방어하기 위해서,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대신 그들은 과학 공동체, 그러니까 과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권위를 부정합니다. 사람들은 더이상 신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이 좀 더 진정한 과학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굉장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학적인 주장과, 유사 과학의 주장들의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유사과학의 다섯 가지 특징을 찾아내었습니다. (1) 그들은 과학계의 진실이 반대 의견을 제압하기 위한 음모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합니다. (2) 그들은 가짜 전문가를 만들어내는데, 이들 가짜 전문가들은 기존에 알려진 지식과 상반되는 주장을 하지만 믿을만한 연구 성과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3) 그들은 어떤 분야를 부정하기 위해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관점과 다른 데이터와 논문을 취사 선택합니다. (4) 그들은 잘못된 비유 및 기타 다른 논리적 오류들을 가진 주장을 합니다. (5) 그리고 그들은 연구에 있어 불가능한 기대치를 설정합니다. 과학자들이 어떤 일정 수준의 확실성을 가진 결과를 내면, 유사 과학자들은 보다 더 확실한 결과를 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유사 과학자들의 접근 방식이 언제나 엉터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비유는 유용하고, 좀 더 높은 확실성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위에서 열거한 몇몇 혹은 전부의 수법들이 사용되는 것을 보았다면, 여러분은 더이상 과학적인 주장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유사 과학은 과학을 가장하고 있지만  내용물이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과학이 세상을 설명하는 보다 올바른 접근 방식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가는 사실 과학에 의해 이미 밝혀졌습니다. 어떻게요? 과학자들은 실험을 했습니다. 2011년 두명의 오스트레일리아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발견한 바를 The Debunking Handbook 이라는 책자에 정리했습니다. 그 결과들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듭니다. 우선 증거들은 잘못된 유사 과학에 반박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사실 대개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과학적인 믿음에 반대되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믿음에 대해 더 익숙하게 만들고, 그 사람들의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효과를 보입니다. 불행히도 그게 우리의 뇌가 동작하는 방식입니다. 잘못된 정보는 머릿속에 오래 남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그 잘못된 정보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정신적인 모델 속에 융합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없애버리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하면 머리속의 정신적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는 커다란 공백을 만들 위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럼, 과학을 믿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나요? 미래는 그저 끝없는 주장들 간의 전쟁인 것인가요?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이들이 발견한 증거는 한편으로 어떻게 하면 과학에 대한 믿음을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잘못된 과학에 대해 반박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지만, 반면에 올바른 과학에 기반한 사실을 강력하게 제시하는 것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을 설명하는 내러티브를 포함하면 더 효과가 좋습니다. 백신에 관한 그릇된 믿음들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집중하는 대신, 아이들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안전함이 증명되었어 왔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왜냐면 우리는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실험 결과를 포함해 엄청나게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989년에서 1991년 사이에 미국 도시의 빈곤 계층 아이들의 백신 접종률이 떨어졌는데, 이는 5만 5천건의 홍역과 123 명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나쁜 과학이 사람들을 호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술들에 대해 알리는 것입니다. 나쁜 과학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이 패턴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그들이 좀 더 올바른 과학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세상에 대해 과학적인 이해를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떤 정보를 신뢰할지에 대한 판단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가진 모든 궁금증에 대해, 증거들을 낱낱이 살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지식은 너무도 방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 어떤 개인도, 과학자건 그렇지 않던간에, 아주 일부를 제외한 모든 것을 마스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과학자들 중에 그들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모든 것을 바닥부터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대신 그들은 다른 과학자들이 발견한 정보와 기술들에 의지합니다. 지식과 과학적인 사고 방식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통해 잘 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학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도로 발전된 과학은 미묘한 지적 노동 분업의 결과로 특징지어지는 사회적인 협업의 결과입니다. 개개의 과학자들은 지나치게 고집이 쎌 수도 있고, 자기만의 이론에 매몰될 수도, 새로운 증거들을 무시할 수도 있으며,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막스 플랑크는 과학은 과학자의 장례식마다 진보한다는 고찰을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로서 과학은 아름다울 정도로 자체 정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아름답게 잘 조직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가까이서 지켜 본 바에 의하면, 과학 공동체는 혼란스러운 동료 평가 프로세스, 엉터리로 작성된 저널 논문들, 편집인에게 보내는 미묘하게 무례한 편지들, 지나치게 무례한 subreddit 쓰레드 (주: reddit 사이트의 특정 주제에 대한 포럼), 지나치게 과대 포장된 학술 성과 발표등으로 점철되어 진리를 추구하기에 부적합한 도구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집단의 지성은 항상 앞으로 전진해 왔습니다. 과학은 이제 존재하는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증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문학 분야에서도 뇌신경 과학과 컴퓨터의 적용이 자유 의지에서부터 어떻게 예술과 문학이 진화했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과학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집단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동시에 여러분은 과학에 대해 설명하고 과학에 대해 줄어들고 있는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할 책임 또한  물려받았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에서, 공공 보건에 관한 저의 일에서, 저는 과학에 의해 밝혀진 가장 기본적인 지식에 대해서조차 의심하는 사람들을 대하곤 합니다. (저널리스트들은 이런 기본적 지식들에 대해 “주류”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마치 그 이외의 것이 과학에 근접한 것인양 말이죠.) 생리학, 영양학, 질병, 의약품, 그 어떤 분야든 말이지요. 의심은 교육 수준이 높은 환자들이 더 심합니다. 교육은 과학을 사람들에게 노출되도록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이고 이념주의에 빠지게 하는 상쇄 효과, 그러니까 자신이 마치 모든 것을 잘 아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받는 학위가 진실에 대해 여러분에게 어떤 특별한 권위를 주었다고 믿는 것은 착각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얻은 것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진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보다 더 큰 그룹의 일원으로서,  호기심, 열린 마음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아이디어를 좇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과학자로서 말이지요.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보다,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왜냐면 지금 우리는 단지 과학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시민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놓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축하합니다 졸업생 여러분. 이 싸움에 참여하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들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작년 6월에 Atul Gawande가 칼텍에서 한 졸업 축사인데, 가짜 뉴스와 가짜 과학이 판치는 요즘, 이들에 대응하기 위해 과학하는 사람 뿐 아니라, 시민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과학적인 사고 방식’ 에 대한 좋은 연설이다.

Atul Gawande

 

아툴 가완데라는 사람에 대해 처음 들어본 것은 뉴요커지에 실렸던 “The Mistrust of Science” 라는 글을 통해서였다.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링크를 올린 것을 따라가서 읽어보고는 아주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고, 글의 말미에서 글쓴 사람이 현직 의사이자 뉴요커지의 스탭 작가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놀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한달인가 두달 전 쯤에 누군가 페이스북에서 이사람이 쓴 책들을 추천하는 것을 보고는, “이사람이 책도 썼네 한번 읽어 볼까?” 하고 가장 최근의 책 Being Mortal 부터 시작해서 꺼꾸로 올라가 결국 이사람이 여태까지 출판했던 네권의 책을 다 읽게 되었다.

Being Mortal은 왜 오늘날 우리 대다수는 죽을때 집에서 죽지 않고 병원에서 죽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죽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할 수 있겠지만, 죽음의 목전에 있는 환자들이 받는 치료의 상당수가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인 생명 연장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예를 들어 치료 가능성이 없는 말기 암 환자의 생명 연장을 위해 인공 심폐 호흡기를 써서 기계적으로 숨을 쉬게 만들고, 독성이 강한 약을 투여해 각종 부작용으로 고통스러운 마지막 나날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 과연 환자를 위하는 길인가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 치료들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이같은”의미 없는” 치료 행위들이 의료 시스템 전반의 비용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문제의식은 더욱 중요해 보인다. 책에서 자자는 Assisted Living, Hospice 와 같은 대안들의 역사와 장단점들을 분석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Checklist Manifesto 는 수술과 같은 의료 행위에서 발생하는 실수들의 광범위함과 심각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의료 과실을 줄읽 수 있는 방법으로서 Checklist 의 유용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창한 최신 연구보다, 체크리스트와 같은 간단하고 단순한 방법이 환자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나는 사실 체크리스트와 같은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지 않다는 데에 더 놀랐다.

Better 와 Complication 두 책들은 뭐라고 간단하게 요약하기 어려운데, 의학(의술?)에 관련된 여러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억나는 몇가지를 적어보면 사형수에게 극약을 주여하는 일에 관여하는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 인간의 살을 먹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를 운좋게 발견해 치료하는 이야기, 물속에 빠진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환자를 완벽한 협업으로 구해내는 이야기 등등. 이러한 다양한 이야기를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라고 한다면, 의사로서 바라보는 의학과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과, 환자의 치료, 의학의 발전을 위한 목표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추천할 만한 책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의 책 Being Mortal이 나이드신 부모님을 둔 자식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다.

책의 내용과 별도로 드는 생각 한가지는, 전문직 종사자의 글쓰기가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바로 이 책들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의사라는 전문직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나아가는 기술은,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회에 더 큰 공헌을 하고 싶은 전문직 종사자라면 반드시 배우고 연마해야 할 기술이다.

 

여인의 향기

 

문득 내 예전 블로그에 남겨진 글들을 보다가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한 연설의 스크립트를 발견했다. 영어로 된 스크립트를 읽다보니, 다시 영화가 보고 싶어졌고, youtube 에서 해당 부분의 영상을 발견. 다시봐도 여전한 감동. 문득 번역이 하고 싶어져서 한글로 옮겨 본다.

 

미스터 심스 (Simms) 는 “자랑스런 베어드 (Baird) 학교의 멤버”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갖잖은 말입니까?
이 학교의 모토가 무엇인가요?
학생들이여, 급우를 팔아먹고 자신의 안녕을 취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커다란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건가요?
여러분.
이 사건에서 어떤 학생들은 도망갔고, 어떤 학생들은 남았습니다.
여기 공격을 받고 있는 찰리 (Charlie)가 있고, 저기에는 자기 아버지의 바지 저고리 안으로 숨은 조지 (George) 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조지에게 상을주고, 찰리를 파멸시키고 있습니다.
나는 도대체 누가 여기를 졸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주:미국 27대 대통령)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트? (주: 41대 미 국무장관)
윌리엄 텔? 뭐 누구든지간에
그들의 정신은 죽었습니다. 만일이 그런 정신이 이곳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면 말이지요.
이제 그것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생쥐들을 위한 배를 만들고 있습니다.
고자질장이들을 위핸 배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 학교 학생들을 남자답게 키워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한번 생각하세요.
왜냐면, 여러분은 이 학교가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정신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도대체 무슨 연극을 하고 있는 겁니까?
이 연극에서 가장 가치있는 영혼은 바로 제 옆에 앉아 있습니다.
저는 이 소년의 영혼이 오염되지않았음을 증언하러 이자리에 왔습니다.
이 소년의 영혼은 협상의 대상의 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아냐고요?
왜냐면 이자리에 있는 누군가는, 누구라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 누군가는 영혼을 팔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오로지 찰리만이 영혼을 팔지 않았습니다.
….
트래스크 (Mr. Trask)씨, 당신은 엉망진창이라는게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제가 당신에게 그게 무언지를 보여줄 수 있겠지만, 저는 너무 늙었고, 피곤하고, 망할 장님입니다.
제가 5년만 젋었어도, 저는 이자리에 화염 방사기를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엉망진창이라고요? 누구 앞에서 감히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저는 겪을만큼 겪은 사람입니다.
제가 앞을 볼 수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전쟁에서 여기 있는 학생들 또래나 그보더 어린 병사들의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정신이 잘려나가는 것만큼 참혹한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의족도 의수도 달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단지 이 훌륭한 학생을 오레곤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이 학생의 영혼을 죽이고 있습니다. 뭐 때문에?
이 친구가 베어드 학교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베어드 학교 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이 학생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베어드의 썩어빠진 인간 나부랑이입니다.
그리고 해리, 재미, 트렌트 (주: 교장의 차에 장난을 친 일당) 너희들이 어디있는지 몰라도, 엿먹어라 이놈들아.

저 아직 안 끝났습니다.
제가 이자리에 오면서, 저는 이곳이 “리더십의 요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둥이 무너지면, 요람도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기둥은 이미 무너졌습니다.
무너져 버렸다고요.
가치있는 남자를 키우는, 리더의 요람이라는 당신. 여러분이 어떤 리더를 키우는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찰리의 침묵이 올바른지, 그른지 모릅니다. 저는 판사나, 배심원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말할 수 있습니다.
찰리는 자기 미래를 위해 누군가를 파는 짓은 안 할 것이라고요.
그리고 그건, 고결함, 청렴함 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건 용기라 불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리더가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입니다.

제 인생에 여러 선택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항상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번도 올바른 길을 택한적이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그건 정말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 찰리가 있습니다. 그도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 섰지요.
그리고 그는 하나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길은 올바른 길입니다.
그 길은 원칙으로 이루어진 길입니다.
그것은 고결한 인격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이 친구가 계속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커미티 여러분. 여러분은 이 아이의 미래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치있는 미래입니다. 절 믿으세요.
그 미래를 망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호해 주세요. 끌어안아 주세요.
언젠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번역] Obama DNC 2016 speech (3/3)

미국은 변해 왔습니다. 하지만 제 조부모가 제게 가르쳤던 가치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가치들은 어느때보다 강하며 여전히 정당, 인종,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 가치들은 살아있습니다. 우리를 미국인으로, 우리를 애국자로 만드는 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왜 우리가 다른 나라의 음식, 음악, 휴일, 스타일을 가져다가 우리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계로부터 이땅에서 공장을 짓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낼 사업가들을 모을 수있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우리 군대가 공공의 선을 위해 지금과 같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파시스트나, 공산주의자, 지하디스트, 또는 이땅의 선동가들이 결국에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미국입니다. 애정으로, 공통의 믿음으로 뭉쳐진 나라.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만들고, 포용하며, 같이 함으로서 혼자일 때 보다 강합니다. 그것이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싸움꾼이자, 정치가, 엄마이자, 할머니, 공직자, 그리고 애국인 그녀가 지키고자 하는 미국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오늘 밤 이 무대를 떠나면서 민주당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손에 맞겨졌다는 확신을 가지는 이유입니다. 제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많은 일을 했지만, 제가 더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워야만 했던 그 모든 힘든 교훈들, 제가 미치지 못했을 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웠던 것은 여러분들이었습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제 벽장에는 두번이나 암으로 인해 거의 모든 것을 일었지만 살아 남았던 한 오하이오 사람이 보낸 편지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편지에서 그는 의료 보험 개혁을 위해 계속 싸우라고 쓰고 있습니다.

제 사무실에는 뉴튼에서 목숨을 잃었던 7살 여자아이가 그린  초록색의 눈을 가진 올빼미 그림이 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제가 그 사건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그 그림을 제게 전해 주었는데, 그 그림은 그 사건으로 아이들을 잃은 슬픔을 행동으로 승화시킨  모든 부모들을 상기시켜 줍니다.

콜로라도의 한 작은 사업가는 자신의 급료를 줄여 그의 불황기에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도록 했는데, 그는 “어렵다고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미국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텍사스에 사는 한 보수주의자는, 스스로 말하길 저와는 거의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제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합니다.

아리조나에 사는 한 용감한 젊은 병사는 아프카니스탄 전장에서 거의 죽을 뻔 했지만, 다시금 말하고 걷는 것을 배워서, 올 초에 백악관의 제 사무실에 혼자의 힘으로 들어와서 경례를 하고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저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바로 이런 국민 여러분들입니다. 미국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전화기를 들고 거리를 누비며 인터넷을 이용해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수 없이 많은 여러분들이 저를 일으켜 세웁니다. 여러분들은 지구상에 제일가는 행동가들이며 저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성취한 모든 변화들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몇번이고 여러분은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제가 여러분을 일으켜드렸었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저는 여러분께 여러분들에 제게 했던 것을 힐러리에게도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저를 뽑아 주셨던 것처럼 힐러리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왜냐면 여러분들은 제가 12년전에 희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변치않는 제 믿음의 원천입니다. 확률이 높지 않고 갈 길이 멀어보일때에도 저를 이끌어준 믿음의 원천.어려움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 불확실성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 그 원대한 희망.

미국 국민 여러분. 여러분은 지난 8년간 그 희망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바톤을 넘기고 다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올해, 이번 선거에서 저는 여러분께 저와 함께 비관주의와 공포를 거부하고, 우리 안의 선을 최대한 이끌어내서 힐러리 클린턴을 다음 미국 대통령으로 뽑는데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세계에 우리는 여전히 이 위대한 나라의 약속을 믿고 있음을 보여줍시다.

이 믿을 수 없는 여행을 함께 해준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갑시다. 신의 가호가 미국과 함께 하기를.

아름다운 원문의 느낌을 살려 번역하기에는 역시나 실력이 달리는 것을 다시금 절감.

[번역] Obama DNC 2016 speech (2/3)

그리고 그것이 힐러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우리 나라가 크고,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나라며, 대부분의 문제들이 단순히 흑과 백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100% 옳더라도,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때로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서로를 중상하기만 해서는 동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진보를 위해서는 서로에 귀 기울여야 하며, 원칙을 가지고 싸우되 아무리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타협점을 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힐러리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것이 제가 존경하는 힐러리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확신을 가지고 남자 여자를 떠나 미국 역사상 그녀보다 더 대통령직을 위한 준비가 된 사람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혹시 여러분의 그녀의 판단력에 의문을 가지신다면, 그녀가 누구를 부통령 후보로 골랐는지를 보세요. 팀 케인은 좋은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겸손하고 공직에 성심으로 임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좋은 부통령, 힐러리를 보다 더 나은 대통령으로 만드는 부통령이 될 것입니다. 제 친구이자 형재인 조 바이든이 저를 더 나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듯이 말이지요.

힐러리는 선거 운동 현장에서 여러분들에게 들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제대로 된 계획이 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아이디어, 근로자가 회사의 이익을 좀 더 잘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아이디어, 아이들을 프리스쿨에 보내기 위한 아이디어,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지 않고도 학생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도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를 보세요. 그는 계획을 잘 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에 근거한 판단을 하는 사람도 아니지요. 그는 스스로 사업가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실이지요. 하지만 저는 그처럼 이런 저런 소송을 당하지도, 급료를 못받은 직원들을 남기지도, 속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만들지 않고도 훨씬 더 많은 성취를 이룬 사업가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70년 넘게 살아오면서 근로자들에 대한 존중을 한번도 보인 적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여러분들을 위한 챔피언이 되겠다고 하는 말을 진짜로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요?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세요. 하지만 여러분이 정말로 공과금 내는 것을 걱정한다면, 경제가 성장하는 것을 원한다면, 모두를 위한 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선택은 무척 쉽습니다. 여러분이 높은 임금, 복지, 공정한 세금 체계, 근로자를 위한 더 큰 지원, 월스트리트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힐러리 클린턴에게 투표하셔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험한 세상에서 누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을 안전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하 걱정하신다면, 선택은 더욱 쉽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전 세계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국민들에게 널리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정보기관들, 외교관들, 군대와 밀접하게 같이 일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테러리즘의 위협에 맞설 판단력, 경험,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그녀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군대는 ISIS를 자비없이 공격하고 있고, 그들의 지도부를 제거하고 있으며, 그들이 점령했던 땅을 다시 되찾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일을 마무리 할 것입니다. 고문을 하거나 특정 종교(이슬람)를 가진 사람들을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거나 하지 않으면서도 말이지요. 그녀는 대통령이 되기에 적합합니다.

한편, 도날드 트럼프는 우리 군대를 재앙이라고 말합니다. 명백히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의 남녀 장병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이 약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발틱해역에서 버마에 이르기까지 수억명의 사람들이 미국을 자유, 존엄, 인권의 상징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나 봅니다. 그는 푸틴과 친하고 사담 후세인을 칭찬하며, 9/11 이후에 저희 옆에 섰던 나토의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돈을 더 내야 한다고 협박합니다. 글쎄요, 미국의 약속은 가격표와 함께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오늘의 미국을 8년전의 미국과 비교해 더 강하며 존경받는 나라라고 인식하는 하나의 이유입니다.

미국은 이무 훌륭합니다. 미국은 이미 강합니다. 그리고 제가 약속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 위대함은 도널드 트럼프랑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이지요.

사실, 그것은 그 어떤 한 사람에도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국, 어쩌면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차이일 지 모릅니다. 바로 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한 차이입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을 “언덕에서 밝게 빛나는 도시”라고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트는 미국을 “분열된 범죄 현장”이며 그 자신만이 고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불법 이민과 범죄율이 지난 수십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관심 없습니다, 왜냐면 그는 이들 문제들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을 내 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마도 충분한 사람들을 겁먹게 할 수 있으면 그가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만큼의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건, 그가 결국 지게 될 도막입니다. 왜냐면 그는 미국 사람들을 도매금으로 팔아먹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심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은 자신만이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며 스스로를  구원자라 칭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은 오래전 이곳 필라델피아에 작성한 영속적인 선언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인이 평등하게 태어났음이 명백한 사실임을 받아들이며, 그 사람들이 모여 더 완벽한 연합체를 이룰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스스의 운명을 정할 수 있는 천부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앞제에 맞서 혁명을 선택하고 독립을 선언한 이유입니다. 그것이 여성들에게 투표장을 향하고, 셀마에서 행진하고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 더 나은 임금을 얻기 위해 투쟁할 용기를 불어넣어 준 원동력입니다.

미국은 한번도 어느 한사람이 우리를 위해 대신 무언가를 해주는 나라였던 적이 없습니다. 미국은 언제나 우리가 함께, 힘들고 느리지만, 때로 좌절감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지속되온 국민이 선출한 정부에 의해 우리가 함께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